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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욕망과 복수의 이야기, 펜트하우스 감상 후기(욕망, 복수극, 막장서사)

by meowlab 2026. 5. 6.

펜트하우스 포스터

📺 오픈 : 2020. 10. 26

🕙 편성 : 넷플릭스 · 21부작

🔗 장르 : 드라마

🌞 출연진 : 이지아, 김소연, 유진, 엄기준, 신은경, 봉태규, 윤종훈, 박은석

 

처음에는 저도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불륜에 살인, 매회 죽었다 살아나는 인물들. 어떻게 보면 조건 반사적으로 채널을 돌려야 할 것들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첫 화를 틀고 나니 어느 순간 새벽 두 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작품이었습니다.

욕망 : 헤라팰리스가 상징하는 계급

드라마 속 헤라팰리스는 단순한 고급 아파트가 아닙니다. 이 공간은 일종의 계급 피라미드의 정점이자, 그 정점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제가 요즘 직접 비즈니스를 준비하면서 자산 관리와 계층 이동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동산 집착과 계급 서열이 단순한 픽션으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에서 주단태라는 인물은 이른바 신분 세탁, 쉽게 말해 타인의 정체성을 가로채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계층으로 편입되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이 신분 세탁은 단순한 범죄 설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가 곧 그 사람의 격을 결정한다는 현실 인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의 사회적 낙인과 진입 장벽에 대한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을 만큼, 이 계층화 문제는 드라마 밖에서도 이미 진행형인 의제입니다.

특히 주단태와 천서진이 구축한 권력 구조는 그들만의 비공식 규범, 즉 메리토크라시의 탈을 쓴 세습과 담합으로 유지됩니다. 여기서 메리토크라시란 능력주의를 뜻하는 개념으로, 표면적으로는 실력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와 인맥이 실력을 압도하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드라마는 이 모순을 청아예술고 입시 비리와 청아재단 운영을 통해 반복적으로 폭로합니다. 제 눈에는 그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할 만큼 현실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아래는 이 드라마가 계층 욕망을 묘사하는 방식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 부동산 자산을 매개로 한 계급 서열의 시각화 (헤라팰리스 층수 = 권력 서열)
  • 교육 기회의 독점을 통한 계층 재생산 (청아예고 입시 비리)
  • 신분 세탁과 정체성 도용을 통한 상류층 편입 시도
  •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뒤바뀌는 복수의 순환 구조

복수극

심수련의 복수극은 분명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엔진입니다. 제가 직접 시청하면서 손에 땀을 쥔 장면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그 흡인력의 핵심은 복수의 대상이 단순히 악인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라는 점에 있습니다. 심수련은 혼자서 주단태와 천서진, 나아가 헤라팰리스 전체를 상대로 판을 뒤엎습니다.

드라마에서 심수련이 구사하는 복수 전략은 흔히 롱게임이라 불리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롱게임이란 즉각적인 보복 대신 오랜 시간에 걸쳐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며 서서히 무너뜨리는 전략을 말합니다. 나애교라는 다른 신분으로 위장해 적진에 스스로 침투하고, 오윤희와 로건 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구도는 개인적으로 글로리와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결국 펜트하우스가 보여주는 복수극의 끝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심수련이 복수를 완성해갈수록 그녀 역시 영혼의 일부를 잃어가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이 유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죽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참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수련의 복수가 빛나는 이유는 그녀가 보여준 압도적인 인내심에 있습니다. 찰나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정교하게 설계된 덫을 놓아 적들의 숨통을 조여가는 모습은, 정통 복수극이 줄 수 있는 지적 유희와 감정적 해방감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이 드라마만의 독보적인 강점입니다.

아쉬운 점

다만 제가 아쉬웠던 부분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라마에서 죽었던 인물이 살아 돌아오는 이른바 무급 환생이 반복될수록, 서사의 긴장감이 무디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캐릭터의 사망이 더 이상 극적 전환점으로 기능하지 않게 되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정서적 투자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것은 드라마 서사론에서 흔히 말하는 내러티브 페이티그, 즉 서사 피로감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페이티그란 동일한 감정적 자극이 반복될 때 시청자가 반응 강도를 점차 낮추게 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드라마 콘텐츠 소비 패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시청자는 예측 불가능한 전개보다 감정적 리얼리즘이 담보된 서사에 더 깊이 몰입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펜트하우스는 전반부에는 그 리얼리즘을 잘 살렸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충격 요소를 쌓는 데 집중하면서 캐릭터 내면의 설득력을 일부 희생한 면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드라마일수록 결말의 완성도에 따라 전체 평가가 크게 갈리는데, 펜트하우스는 그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막장서사라는 표현이 이 드라마에 늘 따라붙지만, 그것이 단순한 비난으로 소비되어서는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상류층의 실제 모습이 이렇지는 않을까,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그만큼 이 드라마가 불편한 진실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복수극의 쾌감에만 취하지 말고, 그 뒤에 깔려 있는 계층 문제와 인간 욕망의 민낯까지 같이 들여다본다면 이 드라마를 훨씬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한번 처음부터 그런 시각으로 다시 보시겠습니까?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8MEXGY_z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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