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한 전 남편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면, 그게 진짜 지옥일까요, 아니면 의외로 버틸 만할까요. 저는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청해보니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 오하라와 전 남편 구은범의 이야기, 드라마 <남이 될 수 있을까>는 헤어짐을 다루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품고 있었습니다.
📺 공개 : 2023. 01. 18
🕙 편성 : 넷플릭스 · 12부작
🔗 장르 : 법정
🌞 출연진 : 강소라, 장승조, 조은지, 이재원
재결합 : 실제로 가능한가?
일반적으로 이혼 드라마라고 하면 막장 요소나 복수극이 전면에 나선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그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보니, 오하라와 구은범의 재결합 서사는 자극보다는 소진과 회복의 반복에 더 가까웠습니다.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났다 또 헤어지는 구조가 다소 반복적이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안에 인물의 심리가 촘촘하게 쌓여 있어 지루함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부분은 유책 배우자라는 법률 개념이 극의 핵심 갈등 장치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유책 배우자란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를 법률 용어로 이르는 말로, 우리나라 민법 제840조에 따르면 유책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 청구를 할 수 없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외도를 한 수연 측이 오히려 이혼 청구를 시도하고, 하라가 이를 역이용해 판세를 뒤집는 장면은 이 조항을 영리하게 활용한 연출이었습니다.
또한 반대신문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반대신문이란 증인을 신청한 상대방이 아닌 반대편 당사자가 증인에게 직접 질문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하라가 수연을 증인석에 세운 뒤, 의처증 프레임을 역으로 이용해 변심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은 이 반대신문의 구조를 드라마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장면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법정 씬은 현실의 재판 흐름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원의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가 인정되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습니다. 여기서 위자료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금을 의미하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명확히 입증되어야 하고 금액도 평균적으로 수천만 원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처럼 50억 위자료가 합의로 성사되는 경우는 현실에서는 거의 보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공감했던 장면은 이혼 당사자를 바라보는 하라의 시선이었습니다. 배우자의 도박 때문에 이혼 진행 중이라는 현실을 가진 시청자 입장에서, 아이가 있어 완전히 연을 끊기 어렵다는 대목은 극 중 상황과 너무 맞닿아 있어 보는 내내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이혼 스토리
드라마가 매회 새로운 이혼 의뢰인을 내세우는 구조, 즉 앤솔로지식 에피소드 구성은 장점이자 동시에 아쉬운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법정 드라마에서 이 방식은 단위 사건마다 독립적인 완결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메인 커플의 서사가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후반부로 갈수록 하라와 은범의 감정선보다 주변 인물의 에피소드가 더 선명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점은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상은 부부의 에피소드는 특히 현실적이었습니다. 남편의 성기능 저하가 탈모 치료제의 부작용에서 비롯됐다는 설정은 실제 의학적 사실과도 일치합니다. 탈모 치료제로 흔히 쓰이는 피나스테리드 계열 약물은 성욕 감퇴나 성기능 장애를 부작용으로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임상적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드라마가 이런 의학적 디테일을 에피소드에 녹여낸 방식은 단순한 막장 소재를 넘어서는 시도였고, 제 경험상 이런 디테일이 있을 때 드라마에 대한 신뢰도가 훨씬 높아집니다.
가은의 살인(미수) 사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전문증거 법칙은 법정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개념입니다. 전문증거 법칙이란 법정에서 직접 진술하지 않은 제3자의 말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형사소송법 제316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은범이 이 조항을 활용해 망인의 진술을 증거로 쓸 수 없음을 주장하는 장면은, 법정 드라마치고는 꽤 정확한 법리를 구사한 대목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제가 주목한 에피소드별 핵심 이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도훈·수연 사건: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가능 여부와 의처증 프레임 역이용
- 상은·무진 사건: 부부간 성실 의무와 성기능 장애의 이혼 사유 해당 여부
- 가은 사건: 살인 고의(故意)와 우발적 충동의 법률적 구분, 전문증거 법칙
- 세나·박승아 사건: 직계존속의 부당한 대우가 이혼 사유로 인정되는 범위
진짜 복수
각각의 에피소드가 현실의 이혼 법률 이슈를 나름의 방식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감정극이 아니라 법률 교양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일부 사건의 해결이 법리적 설득보다 감정적 호소에 기댄 경우도 있었고, 그 지점에서는 현실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남이 될 수 있을까>는 이혼이라는 소재를 통해 관계의 균열, 용서,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이야기합니다. "진짜 복수는 저 사람과 상관없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대사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후반부 서사의 속도감이 아쉽고 일부 법정 장면이 감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면이 있지만, 어른의 사랑과 이별을 이토록 진지하게 다룬 로맨스물은 최근 들어 드물었습니다. 이혼 소송이 가진 법률적 함의에 관심 있거나, 관계의 상처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분이라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시청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법률적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