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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드라마 리뷰 (법리, 송무팀, 성장)

by meowlab 2026. 5. 9.

에스콰이어 드라마


처음에는 이 드라마가 그냥 한국판 수트 리메이크 정도겠거니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법정 드라마라고 하면 감동적인 약자 구원 서사나 재벌 비리 폭로 공식을 떠올리기 쉬운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과 꽤 달랐습니다. JTBC 에스콰이어는 도덕과 법리를 정면으로 충돌시키면서 시청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지는 드라마였습니다.

 

📺 오픈 : 2025. 08. 02

🕙 편성 : 넷플릭스 · 12부작

🔗 장르 : 드라마

🌞 출연진 : 이진욱, 정채연, 이학주, 전혜빈

 

법리 : 도덕과 충돌하는 법적 논리의 실체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면접 에피소드였습니다. 트롤리 딜레마, 즉 다수를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키는 선택이 살인죄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신입 지원자 효민만 혼자 "살인죄가 성립한다"고 답합니다. 다른 지원자들이 다수를 살렸다는 결과에 집중할 때, 효민은 범죄의 구성 요건 충족 여부만 냉정하게 분석합니다.

여기서 구성 요건이란 어떤 행위가 범죄로 성립하기 위해 법률이 규정한 필수 조건들을 의미합니다. 고의, 행위, 결과, 인과관계가 모두 갖춰져야 범죄가 성립하는데, 효민은 스위치를 내리는 행위가 있었고 기술자의 사망을 인식한 상태에서 행위가 이루어졌으니 고의범의 구성 요건이 충족된다고 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법정 드라마는 정의로운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인물을 그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그 공식이 완전히 깨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벌을 주장한 게 아니라 법적 성립 여부만 따진 효민의 답변은, 도덕과 법이 얼마나 다른 언어를 쓰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신체 부위 반환 청구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잘려 나간 팔의 소유권이 원고에게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효민의 주장은 처음엔 황당하게 들렸지만, 신체 일부를 소유권의 객체로 인정하면 장기 매매권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자 제가 순간 멈칫했습니다. 이것이 법리와 상식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는 걸, 직접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송무팀 : 냉정한 원칙주의가 감추고 있던 것

에스콰이어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팀은 윤석훈 변호사의 송무팀입니다. 송무란 소송 업무 전반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기업 자문이나 계약 검토 같은 비교적 안정적인 업무와 달리 법정 공방을 직접 수행하는 고강도 실전 업무를 뜻합니다. 성과급 얘기가 나오는 기업팀, 워라밸을 내세우는 다른 팀들 사이에서 석훈이 내뱉은 말은 딱 하나였습니다. "시간 개념 없는 사람 지원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데 제가 직접 지켜본 석훈은 단순한 원칙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스 절도 사건에서 효민이 무단으로 현장 조사를 다녀왔을 때, 그는 당장 해고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효민이 "판결하기 전에 변론의 기회는 주셔야죠"라고 맞서자, 오히려 조사 결과를 끝까지 들어봅니다. 원칙을 이용한 반박에 원칙으로 응수한 셈인데, 이 장면에서 석훈이라는 인물의 깊이가 처음으로 드러납니다.

특히 박기범 정자 멸실 사건에서 석훈이 구사한 전략은 법정 바깥의 싸움, 즉 여론과 협상력을 활용한 링 밖의 전술이었습니다.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맡은 물건을 최선을 다해 보관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석훈은 이 법적 책임을 법원의 판결 대신 언론이라는 압박 수단과 결합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습니다. 제 비즈니스 루틴에서도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시스템이 불리할 때 시스템 밖에서 판을 바꾸는 능력이 진짜 실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에스콰이어가 그리는 송무팀의 매력을 한 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업팀: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자문 중심, 비교적 예측 가능한 업무
  • 공정거래팀: 성과급이 높지만 규제 환경에 따라 업무 강도 변동
  • 송무팀: 법정 실전 중심, 불확실성 높지만 가장 직접적인 법리 싸움

성장 : 신입 변호사가 배우는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람

효민의 성장 서사가 흥미로운 건, 그 성장이 법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판단 기준의 이동에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 효민은 법리적 냉철함이 최고 덕목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최철민 사건을 거치면서 그 믿음이 흔들립니다.

가정부 김영숙은 절도 전과가 있었고 협박 정황도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과 기록이 있는 고소인의 증언은 신뢰도가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느낀 건 달랐습니다. 전과 기록이 있는 사람도 진실을 말할 수 있고, 깨끗한 외양의 의뢰인도 아동을 학대할 수 있다는 것, 효민은 이 사실을 이 사건에서 처음으로 몸으로 배웠습니다.

노시보 효과가 등장하는 비접촉 사고 에피소드도 인상 깊었습니다. 노시보 효과란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 개념으로, 해롭다는 믿음이나 심리적 공포가 실제 신체 이상을 유발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이가 차에 치이지 않았음에도 다리 마비 증상이 나타났고, 그 원인이 엄마의 과잉 반응에서 비롯된 심리적 유착이었다는 결론은 법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의 내면까지 다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분리불안 장애란 특정 대상과의 분리를 극도로 두려워하여 일상 기능이 저하되는 불안 장애로, 아동에게 나타날 경우 보호자와의 관계 패턴이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효민이 진짜 변호사로 인정받는 순간은 화려한 법리 논쟁이 아니라, 가스 절도 피해자인 검침원과 엔지니어들을 소시민으로 재정의한 변론에서였습니다. 법정에서 어떤 서사를 구성하느냐, 어느 집단을 약자의 위치에 놓느냐가 판세를 바꾸는 핵심이라는 것을 효민은 그때 처음 실감했을 것입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법 개념들 중 일부는 실제 판례와 법학 이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한국 법원에서 신체 일부의 소유권과 관련된 법리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영역이며, 법학계에서도 논쟁이 진행 중인 주제입니다.

에스콰이어는 법정 드라마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인가'를 묻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법리에 능숙해질수록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역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야 진짜 변호사가 된다는 메시지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만약 전문직 장르를 좋아하고, 깔끔한 미장센과 날 선 대사를 즐긴다면 본편을 한 회만 보셔도 충분히 납득하실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시청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7us842bf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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