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날레를 보는 내내 두 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손수건을 몇 번이나 꺼냈는지 모릅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꼬마였던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을,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지켜보는 게 이렇게 뭉클할 줄은 몰랐습니다.
📺 오픈 : 2025. 11. 27
🕙 편성 : 넷플릭스 · 12부작
🔗 장르 : 미국 · SF
🌞 출연진 : 위노라 라이더, 데이빗 하버, 밀리 바비브라운, 핀 울프하드, 게이튼 마타라조
10년 대장정의 끝
제가 직접 시청해보니, 이번 시즌 5 피날레는 단순한 드라마 최종화가 아니라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통째로 보는 경험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최종 빌런인 베크나와 하이브 마인드가 거대한 거미 형상으로 심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의 집결체였습니다. 여기서 코즈믹 호러란 인간의 이해 범위를 초월한 우주적 존재에 의한 공포를 의미합니다. 러브크래프트적 전통에서 비롯된 이 장르는 단순한 괴물 공포가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거대함' 앞에 선 인간의 무력감을 본질로 합니다.
거미라는 형상 자체가 단순한 시각적 선택이 아니라는 점도 직접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모이라 세 자매나 북유럽 신화의 노른 여신들처럼, 서구 신화 속 거미는 '운명의 실타래를 직조하는 자'라는 원형적 상징을 지닙니다. 베크나가 하이브 마인드를 거미줄처럼 펼쳐 호킨스와 뒤집힌 세계를 통제하려 한 것은, 스스로 전지전능한 설계자가 되고자 한 욕망의 시각화였던 셈입니다. 조이스가 도끼로 베크나의 목을 치는 장면에서 전 시즌에서 떠나간 인물들이 몽타주로 스쳐 지나갔을 때, 저는 그것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잔혹하게 짜인 운명의 실을 끊어내는 의식처럼 느껴져 또 한 번 울고 말았습니다.
이 피날레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야기의 구조입니다. 시나리오 이론에서 말하는 세이브 더 캣(Save the Cat) 구조를 적용해보면, 베크나가 죽는 지점이 전체 러닝타임의 절반에 해당하는 미드포인트(Mid-point)에 위치합니다. 미드포인트란 이야기의 정확히 중간 지점으로, 거짓 승리 또는 거짓 죽음이 자리하는 구간입니다. 미드포인트에서 거짓 승리가 나오면 결말에서는 그 반대인 실패와 상실이 찾아오는 것이 이야기의 에너지 법칙에 가깝습니다. 그 법칙대로, 엘은 결국 뒤집힌 세계와 함께 소멸을 택합니다.
피날레 전반의 핵심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낸시와 엘이 심연에서 하이브 마인드와 장엄한 사투를 벌임
- 조이스가 도끼로 베크나의 목을 치며 운명의 실타래를 끊음
- 폭탄이 터지고 뒤집힌 세계가 소멸하는 순간 엘도 함께 사라짐
- 어른이 된 아이들이 다시 던전 앤 드래곤을 즐기며 10년 대장정이 마무리됨
- 홀리 세대가 지하실로 내려와 게임을 이어받으며 시즌 1의 오프닝과 수미상관을 이룸
수미상관이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같은 이미지나 장면으로 연결되는 구성 방식입니다. 시즌 1의 오프닝이 아이들의 D&D 게임 장면으로 시작했고, 피날레 역시 그 게임 장면으로 마무리된 것은 10년의 서사를 하나의 완결된 원으로 묶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의 내면 성장을 다루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드라마비평가협회(TCA)는 캐릭터 중심 서사가 시청자의 감정적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Television Critics Association). 실제로 이번 시즌은 단순한 괴물 대전보다 각 인물이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과정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그 덕분에 피날레의 감동이 배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엘의 결말
제가 피날레를 보면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장면은 마이크와 일레븐의 마지막 이별이었습니다. 프린스의 퍼플 레인이 흐르는 가운데 두 사람이 눈물을 쏟는 그 순간, 밀리 바비 브라운이 대본 리딩 이후 두 시간을 울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엘의 생존 여부를 둘러싼 마이크의 가설은 꽤 정교합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총을 맞은 칼리가 죽기 직전 자신의 능력으로 엘이 소멸하는 환영(Illusion)을 만들어냈고, 실제 엘은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환영이란 특정 대상에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능력으로, 칼리는 시즌 2에서 상당한 거리에서도 터널이 무너지는 환영을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가설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이크가 던전 마스터 역할을 맡고 있다는 설정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던전 마스터(Dungeon Master)란 D&D 게임에서 세계관을 설계하고 서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진행자를 말합니다. 이 역할은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이 전제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마이크의 가설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보여도, 그것이 던전 마스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사실 자체가 '순수한 희망적 상상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습니다.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이 모호함을 남겨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피날레의 마지막을 장식한 홀리의 등장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피날레를 보는 내내 다음 시즌이 생긴다면 홀리가 새로운 중심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로 홀리 세대가 지하실에서 D&D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됐습니다. 이것이 순수한 마무리인지, 아니면 시즌 6을 향한 떡밥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넷플릭스 공식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기묘한 이야기 시즌 6에 대한 공식 확정은 없는 상태입니다(출처: Netflix). 하지만 10년간 구축해온 세계관과 팬덤의 규모를 감안하면, 홀리를 중심으로 한 스핀오프 혹은 새로운 시즌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는 시각도 충분히 있습니다.
아쉬운 점
한 가지 아쉬움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엘의 초능력이 위기의 순간마다 유일한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구조는 이번 시즌에서도 반복됐습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란 이야기의 논리적 흐름 없이 갑작스러운 외부 요소로 갈등이 해결되는 서사 기법을 말하는데, 이로 인해 주변 인물들의 활약이 주인공 각성을 위한 보조 장치처럼 소모되는 느낌이 드는 구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80년대 레트로 감성과 성장의 아픔을 이토록 세련되게 버무려낸 작별 인사는, 근래 본 SF 판타지 드라마 중 단연 압도적이었습니다.
10년간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볼 미드가 없다는 허탈함이 있을 만큼, 이 시리즈가 남긴 자리는 꽤 넓습니다. 엘이 어딘가에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홀리 세대가 이어갈 새로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아직 기묘한 이야기를 보지 않은 분이라면 시즌 1부터 천천히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피날레의 감동은 10년의 서사를 함께 걸어온 사람에게만 온전히 전달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