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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리키시 리뷰 (성장서사, 스모, 넷플릭스)

by meowlab 2026. 4. 27.

리키시 스틸컷


솔직히 저는 스모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뚱뚱한 남자들이 서로 밀어내는 스포츠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넷플릭스 드라마 리키시를 보고 나서 그 편견이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밑바닥 청년이 모래판 위에서 스스로를 증명해가는 이야기, 예상보다 훨씬 뜨겁고 묵직했습니다.

 

📺 개봉 : 2023. 05. 04

🕙 편성 : 넷플릭스  · 8부작

🔗 장르 : 드라마

🌞 출연진 : 이치노세 와타루, 소메타니 소타, 쿠츠나 시오리

 

성장서사

동네 양아치가 모래판에 서기까지

키요시라는 이름이 사실 이중적인 뜻을 품고 있다는 걸 보다가 우연히 알아챘습니다. 요즘 육퇴 후 일본어를 독학하고 있는 덕분이었는데, 오제 키요시라는 이름을 그냥 읽으면 흔한 이름이지만, 오제키 요시(大関 良し)로 끊어 읽으면 요코즈나 바로 밑 계급인 오제키를 향한 '좋다, 해보자'는 뜻이 됩니다. 이름 자체가 이미 스포일러였던 셈이죠. 그 순간 제가 느낀 감탄은 꽤 컸습니다.

주인공 키요시는 처음부터 영웅 기질 같은 건 없습니다. 가난한 소년 가장으로 후배들 돈을 뜯어내는 게 일상이었고, 꿈이라는 단어는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던 날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유도 유망주 출신이라는 과거만 남아 있던 그가 스모판에 뛰어드는 건 오직 돈 때문이었습니다. 이 설정 자체는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에서 링 위로 올라서는 주인공과 상당히 겹쳐 보였는데, 절박함이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는 구조는 국경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스모계에서 신인 선수를 마에즈모(前相撲)라고 부릅니다. 이는 정식 번호가 붙기 전의 견습 단계를 의미하며, 이 시기에 선수들은 기초 기술인 시코(四股)를 수천 번 반복하며 몸의 중심을 다집니다. 시코란 한쪽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땅을 강하게 밟는 동작으로, 허리와 하체를 단련하는 스모의 핵심 기초 훈련입니다. 키요시가 이 반복적인 훈련을 무시하고 힘으로만 밀어붙이려 했던 초반 장면은 스포츠 드라마의 전형적인 통과의례처럼 보이면서도, 그의 오만함이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굳어진 태도라는 점이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스모

스모라는 세계가 품은 위계와 부조리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스모 자체가 아니라 스모계라는 조직 문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헤야(部屋) 제도가 드라마를 통해 서서히 이해됐는데, 헤야란 스모 선수들이 스승과 함께 숙식을 공유하며 훈련하는 사제 집단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군대와 가족 사이 어딘가에 있는 구조입니다.

이 폐쇄적인 집단 안에서 후원 회장과 선수 가족 사이의 유착, 승부 조작 의혹, 기자에 의한 외압까지 드라마는 꽤 날카롭게 건드립니다. 이노시마 기자가 선수의 은퇴를 언론 쪽에서 밀어붙이려는 장면이나, 후원 회장 아내가 아들의 승리를 위해 비선 개입을 하는 장면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민낯을 제법 직설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런 구도는 어디서나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스모라는 생소한 배경 위에 얹혔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읽혔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나나미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의 감정선을 자극하거나 이탈을 막는 기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거든요. 처음부터 고급 횟집을 노리고 접근한 설정이 나중에 밝혀지는 식이었는데, 그 결말 처리가 다소 너무 쉽게 마무리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모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요코즈나(横綱)라는 계급이 단순한 성적 우수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요코즈나란 스모 최고 계급이자 품격과 인격까지 갖춰야 인정받는 자리로, 한번 오르면 성적이 떨어져도 강등 없이 은퇴만 있습니다. 류코프 관장이 아들 류기를 대하는 방식이 단순한 부자 관계가 아닌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리키시

배우들이 직접 만든 몸이 만든 설득력

드라마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는 배우들이 실제로 스모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화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습니다. 땀과 먼지가 뒤섞인 도장 공기, 두 거구가 격돌할 때 전해지는 진동, 그 모든 게 실제로 수개월 이상 몸을 만든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질감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일본 스모협회(日本相撲協会)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역 스모 선수의 평균 체중은 160kg 이상이며, 상위 리키시(力士)들은 근육과 지방의 비율을 정밀하게 조절해 경기력을 유지합니다(출처: 일본스모협회). 리키시란 스모 선수를 부르는 공식 명칭으로, 이 드라마의 제목 자체가 주인공이 진정한 스모 선수로 인정받는 여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스포츠 드라마는 실제 훈련 장면의 밀도가 낮아지는 순간 극의 긴장이 급격히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리키시는 그 점에서 끝까지 밀도를 유지했습니다. 특히 엔야의 마지막 경기 장면은 진통제를 맞고서도 모래판에 선다는 설정이 다소 진부할 수 있음에도, 배우의 표정과 몸동작이 그 진부함을 완전히 덮어버렸습니다.

리키시 제작 과정에서 배우들이 받은 훈련의 강도와 방식에 관심이 있다면, 일본 스포츠 과학 연구기관들이 발표한 스모 선수 체력 관련 연구를 참고해볼 수 있습니다(출처: J-STAGE 일본 스포츠과학 논문).

이 드라마를 보면서 떠올랐던 작품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먹이 운다: 절박한 환경에서 링 위로 올라서는 구조, 남성 연대의 서사
  • 슬램덩크: 처음엔 딴 목적으로 시작했다가 스포츠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흐름
  • 네이비씰류 드라마: 혹독한 집단 훈련과 위계 안에서 개인이 성장하는 방식

진심의 모래판

오만한 청년이 진짜 리키시가 되는 순간

드라마의 핵심은 결국 이 질문으로 모입니다. 돈 때문에 시작한 사람이 진짜 그 세계를 사랑하게 될 수 있는가. 키요시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해고 위기, 트라우마, 짝사랑의 배신, 동료들의 냉대를 거쳐 조금씩 바뀝니다. 그 과정이 너무 매끄럽지 않아서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싫어했던 선배 엔야의 은퇴식에서 손도장을 찍어주는 장면은, 말 한마디 없이 그 사이의 모든 시간을 요약해버렸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런 장면이 오래 남는 이유는 대사가 아니라 맥락 때문입니다. 그 맥락을 쌓기 위해 드라마가 한 시즌 내내 공들여온 것들이 그 순간 한꺼번에 터집니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됐던 장면도 있었는데, 키요시가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던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분노의 표출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갑작스럽게 소비되고 넘어가 버려서 오히려 인물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보면서 잠깐 멈칫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영향으로 일본 콘텐츠에 거리를 두고 살았는데, 리키시를 보면서 그게 많이 허물어졌습니다. 과한 리액션이나 일부 연출 방식은 아직 적응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사람이 무언가와 싸우는 이야기는 국적과 상관없이 울린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스모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모래판이 낯설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드라마는 결국 각자의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건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감각입니다. 넷플릭스에 계정이 있다면, 일단 1화를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2화 이후로는 그냥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LwkGQtU0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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