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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공감서사, 직장생존, 열등감)

by meowlab 2026. 4. 22.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숨이 막힐 줄 몰랐습니다. 대기업 부장에 서울 자가 아파트라는,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사는 김 부장의 이야기가 제 심장을 이렇게 세게 누를 줄은요.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화려한 스펙 뒤에 숨겨진 중년 남성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보는 내내 웃기면서도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묘한 경험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 시청 채널 : 넷플릭스, TVING

🕙 편성 : 한국  ·  12부작

🔗 장르 : 드라마

🌞 출연진 : 류승룡(김낙수), 명세빈(박하진), 차강윤(김수겸), 유승목(백정태), 이신기(도진우)

 

공감서사 : 성공한 삶이라는 착각

 일반적으로 "직장 드라마"라고 하면 주인공이 불합리한 조직에 맞서 싸우거나, 통쾌한 복수를 펼치는 서사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제 경험상 그런 드라마들은 보는 순간은 시원하지만 며칠 지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달랐습니다. 김 부장은 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칩니다. 본부장의 골프 모임에 픽업 셔틀로 불려나가고, 자신보다 어린 도 부장의 고급 신축 아파트 앞에서 "전세겠지, 제발 전세겠지"를 중얼거리는 장면은 코미디이면서 동시에 처절한 생존기입니다.

 이 드라마가 건드리는 핵심 감정은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자신의 절대적 상황과 무관하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느끼는 결핍감을 의미합니다. 한 친구는 건물주가 되어 월세 3천을 거둬들이고, 라이벌 도 부장은 반포 리버팰리스를 자가로 소유 중입니다. 김 부장의 생활 수준이 객관적으로 나쁜 것도 아닌데,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자신이 가장 뒤처진 것처럼 느껴지는 그 감각.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며 "이거 나 얘기잖아"를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드라마가 이 공감서사를 설득력 있게 구현할 수 있었던 데는 유성룡 배우의 공헌이 절대적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장면 안에서 배우의 표정, 동선, 소품 배치까지 아우르는 연출 요소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유성룡은 과장 없이 딱 현실적인 온도로 김 부장을 구현해냈습니다. 홀인원을 친 직후의 희열과, 캐디 팁으로 수십만 원이 빠져나가는 순간의 표정 변화는 교과서적인 캐릭터 연기였습니다.

 

직장생존 : 조직이 개인을 소모하는 방식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날카롭다고 느낀 부분은 조직이 사람을 정리하는 방식을 묘사한 장면들입니다. 동기인 허태완이 울릉도 전근 발령을 받는 장면, 그리고 인사 팀장이 "총량은 정해져 있는 법"이라며 다음 정리 대상자를 논의하는 장면은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이었습니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구조는 전형적인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입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이란 조직이 내부 갈등이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특정 개인을 희생시킴으로써 일시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집단 심리 현상을 뜻합니다. 허태완이 500만 원 위로금과 함께 지방으로 보내지는 동안, 회사는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타깃을 이미 물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명단 안에 낙수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이 흐름을 보면서 저는 실제로 비슷한 상황을 목격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조용히 한 명이 사라지고, 그 자리가 다른 갈등으로 채워지고, 조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러가던 장면들. 드라마가 허구인데도 불편하게 느껴진 이유는 그것이 너무 정확한 재현이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가 지적하는 직장 내 생존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조직 내 정치(political dynamics)는 성과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 인사권자의 신임이 곧 생존의 열쇠가 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 희생양이 된 개인은 구조적 문제보다 개인의 능력 문제로 처리된다
  • 동료와 친구 사이에서 침묵이 자기보호 수단이 되어버린다

 실제로 국내 직장인의 정신건강 실태를 보면, 한국 근로자 중 상당수가 직장 내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주요 스트레스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드라마 속 김 부장의 이야기가 유독 공감을 얻는 이유는 이 숫자들이 방증하는 현실과 정확히 겹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열등감 : 꼰대가 만들어지는 과정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초반부에 김 부장 캐릭터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느꼈습니다. 빨간색이 같다 다르다로 팀원들을 압박하고, 레스토랑 직원에게 자신의 실수를 화풀이하는 장면들이 "실제로 저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회를 거듭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김 부장의 꼰대적 행동은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 수십 년간 쌓인 열등감이 출구를 찾지 못한 결과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반장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한 기억, 반장이 된 친구의 비아냥, 결과를 보고도 냉랭하게 "손 씻고 와"라고만 했던 어머니. 이 장면들이 쌓여 김낙수라는 인물의 심리적 배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projection)와 맞닿아 있습니다. 투사란 자신이 수용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열등감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어 기제를 뜻합니다. 김 부장이 팀원들에게 퍼붓는 분노의 실체는 팀원들의 실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도 부장과 비교당하는 자신의 상황과 임원 승진을 못 이루고 있다는 자괴감이었던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에 한 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심리적 층위가 깊은 캐릭터일수록, 내면의 균열이 드러나는 과정이 더 천천히 묘사될 때 훨씬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김 부장의 각성과 변화 시도가 후반부에 다소 빠르게 처리되면서, "과연 이 사람이 진짜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충분한 무게를 싣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블랙 코미디(black comedy) — 어두운 현실을 웃음의 형식으로 비트는 장르 — 의 특성상 너무 무겁게 가면 안 된다는 제약이 있었겠지만, 조금 더 촘촘한 내면 서사가 있었다면 완성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의 강점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하이퍼리얼리즘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때로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재현하는 예술적 기법을 말합니다. 부동산, 직급, 자녀 교육, 친구와의 비교.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 중장년층의 일상에서 매 순간 작동하고 있는 기준들이고, 드라마는 그것을 과장도 미화도 없이 카메라 앞에 그냥 올려놓았습니다. 2024년 기준 국내 50대 남성의 고용 불안 체감률이 다른 연령대 대비 높은 수준으로 집계되는 현실을 감안하면(출처: 통계청), 이 드라마가 왜 중장년층에게 특히 뼈아프게 읽히는지 이해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이었던 장면은 류승룡이 아내와 상의 없이 퇴직금으로 상가를 매입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화면을 멈추고 한참을 그냥 있었습니다. 남편의 도박으로 7년을 힘들게 지낸 제 경험 때문이었는지, "왜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먼저 무너지나"라는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가 남긴 질문은 하나입니다. 당신이 죽을 힘을 다해 지키려는 그것이, 당신이 지켜야 할 것이 맞긴 한가. 직장인이라면, 특히 중년의 문턱에 선 분들이라면 이 드라마를 한 번쯤 보시길 권합니다. 다만, 웃다가 갑자기 서늘해지는 순간이 올 준비는 해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vAQK9TZ6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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